[양구] 비봉산 여행

비봉산에 깃든 양구의 낙원의식

이학주 승인 2020.08.02 16:19 의견 0
 


2020년 7월 10일 오전 10시에 비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전국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비 오기 전에 비봉산을 답사해야지.” 나는 그렇게 해서 비봉산으로 갔다. 춘천에서 양구로 가는 길은 벌써 한 차례 비가 내렸는지 도로 위는 빗물로 젖어 있었다. 양구군청이 자리잡은 골짜기인 냉천골에 도착했다. 냉천골공원에 차를 세웠다. 냉천골 입구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예전에 봤다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조심히 다녀오라고 했다. 인사를 받으며 나는 산으로 올랐다.

공원을 지나자 곧장 비봉산산림욕장이라는 커다란 활[아치]모양의 구조물이 나왔다. 그 구조물은 마치 옛날 축하를 위해 마을 입구에 세웠던 솔문처럼 느껴졌다. 성큼 그곳으로 들어서자 등산길이 펼쳐졌다. 계곡을 따라 난 길 옆에 거북조각이 쉴 새 없이 물을 뿜고 있었다. 아마도 이 골짜기를 대표하는 냉천(冷泉), 곧 찬 샘이리라. 냉천골[冷泉谷]은 찬 샘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리라. 어쩐 지 찬 샘이 솟는 옆 계곡에는 물기 가득 숲이 울창했다.

옛날 양구현감이 주재했던 비봉산서낭제가 떠올랐다. 비봉산서낭당은 김화의 김화서낭제와 함께 영서북부의 대표적인 서낭제였다. 규모도 컸지만 현감이 직접 관리하는 서낭제였다. 마치 요즘 강릉단오제를 강릉시장이 주재하는 것과 같았다. 비봉산은 그만큼 양구에 있어 중요한 산이었다. 이 서낭제는 언제 끊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84년 강원도 민속경연대회 때 양구의 민속놀이로 선보인 것으로 봐서 없어진지 오래 되지는 않은 것 같다.

비봉산서낭제는 제사일이 정해지면 도가를 선정하고 3일 전에 도가와 서낭당에 왼새끼로 만든 ‘검줄(儉繩)’이라는 금줄을 치고 부정을 가렸다. 부정한 사람은 서낭당 근처에 접근치 못하며, 택일한 후에 초상이 나거나 부정한 사건이 발생하면 제사를 연기하였다. 서낭제에는 목욕재계한 사람만이 참석하나, 마을사람 모두가 신(神)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즐겼다. 헌관은 대개 연장자 순으로 정하였다.

비봉산서낭당에는 <변 부자 이야기>라는 영험담이 있다.

양구읍 고대리에 부자이나 인색한 변 부자가 살았는데 나이 40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아들을 보게 되어 애지중지 하면서 키웠다. 그러나 아들은 커가면서 싸움질과 행패를 일삼아 마을사람들과 변부자를 괴롭혔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변부자의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서는 그가 몹쓸 병에 걸려 누워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고 변부자의 아들이 서낭당에 올라가 오줌을 싸고 금줄을 끊어 불에 태워버렸으니 앓아눕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들 수근 거렸다. 게다가 이 재앙이 변부자 뿐 아나라 양구고을 전체에도 내릴 것이라고 웅성거렸다. 변부자가 유명한 점쟁이를 불러 물었더니 서낭신의 노하심으로 비롯한 재앙이라고 하였다. 변부자는 길일을 택하여 서낭신에게 굿을 해주고 지성으로 빌어 마침내 아들을 살려내었다.

이 이야기는 공동체사회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살며 이웃에게 해코지를 일삼던 변 부자 아들에게 서낭신은 벌을 주고, 잘못을 뉘우치자 벌을 거둬들인 예화이다. 이웃은 서로 돕고 예쁜 말을 해주며 함께 잘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비봉산서낭당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산으로 올랐다. 산길은 잘 정비되어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인지라, 숲속은 음기(陰氣)로 가득했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누군가 길옆에 돌탑 두 기를 쌓아놓았다. 크고 작은 두 개의 돌탑 중 하나는 할아버지 하나는 할머니돌탑이리라. 돌탑 바닥에 깔린 석축으로 봐서 옛날 누군가 제단(祭壇)으로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우리의 조상신은 모두 산으로 가는 것이니, 옛 사람들의 산치성은 곳곳에서 행해질 수밖에 없었다. 산 중턱에는 쉴 수 있는 정자와 의자도 만들어서 좋았다.

 


어느덧 비봉산 정상이 보였다. 정상에는 헬리곱터가 내릴 수 있는 표시가 되어 있었고, 전망대와 ‘비봉산 일출봉’이라 쓴 표석이 있었다. 전망대에는 조망할 수 있는 산과 주요 건물을 사진으로 찍어 그 위에 표시해 두었다. 이곳에서 보는 양구의 풍경은 정말 좋았다. 파로호에 떠 있는 한반도섬을 비롯하여 양구시내 및 양구의 주변풍광이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모두 눈에 들어왔다. 순간 맺혔던 가슴이 탁 트였다.

비봉산은 458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이 산은 양구인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산이다. 옛날 양구에서는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천제(天祭)이다. 부족국가시절부터 매년 개천절이나 길일을 택해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양구사람들의 안녕과 복락을 기원하였다. 그래서 비봉산 정상은 신성시공(神聖時空)이었다. 제천단(祭天壇)을 쌓아놓고 정성으로 제사를 올렸다. 이때 쌓았던 제단의 흔적이 이곳을 정비하기 전까지는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양구에서는 매년 새해가 되면 이곳에서 아침 7시에 신년 해맞이행사를 연다. 제물을 차려놓고 양구군수가 제관(祭官)이 되어 군민안녕기원제를 지내고, 잡귀를 쫓아내는 새해 소원 함성 보내기, 기원을 하늘에 알리는 소원성취 풍선 날리기, 양구 공동체를 확인하는 화합의 장, 양구군민이 하나 되어 풍요를 기원하는 떡국 먹기 행사를 행한다. 이 행사는 어쩌면 현대판 제천제이다.

그럼 왜 양구군민들은 비봉산을 신성시공으로 생각했을까? 정답은 비봉산에 올라보면 안다. 비봉산 꼭대기에서 손만 뻗치면 하늘에 곧 닿을 듯 느껴진다. 게다가 산세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 비봉산(飛鳳山)은 봉황(鳳凰)이 날아 앉은 형상이다. 날개를 폈다가 웅크리면서 이곳에 낙원임을 보이고 있다. 다들 알고 있듯, 상서로운 새 봉황은 아무 데나 앉지를 않는다. 그런데 양구에는 봉황이 날개를 쫙 펴고 금방 하늘로 날아오를 듯 앉아 있다. 그 때문에 양구는 최고의 길지이다. 봉황은 대나무를 먹이로 하는 새이기에 비봉산 앞에는 대 죽(竹)자를 쓰는 죽리와 죽곡리(竹谷里)가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양구사람들은 양구를 최고의 낙원으로 가꾸어 간 것이다.

비봉산에 오르자 하늘은 잠깐 소나기를 퍼부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천만 번 변하는 구름의 형상 아래로 소나기를 퍼부었다. 소나기처럼 열렬하게 반기는 뜻이리라. 소나기소리를 들으며 전망대에서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나에게 솟고 있었다. 그랬다 신바람이었다. 신성구역 비봉산 꼭대기에서 맞이하는 신명(神明)이었다. 뭐든 긍정적으로 맘만 먹으면 이뤄질 수 있다는 비봉산 신령의 가르침이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들고, 신비의 새 봉황이 날 듯 양구군민 모두 신바람 나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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