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해파랑 길의 동화

동해안 해파랑길 모래조각이 된 파랑이

이학주 승인 2020.07.18 15:34 의견 0
 

파랑아 슬퍼하지 마

 

 

강원도 동해안 백사장이 참 예쁜 바닷가에 스무 살 ‘파랑’이가 있었지요. 파랑이는 여름 어느 날 모질게 파도가 치는 날에 태어났다고 해서 파랑(波娘)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파도치는 아가씨’라는 뜻이라나요. 어쩌면 이름만큼이나 파도처럼 억세게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파랑이 아버지는 산통이 있는 아내를 두고 고기잡이를 떠나는 것이 못내 불안했습니다. 파랑이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떼배를 매어 미역을 따고 가까운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날은 비가 좀 내렸지만 아침나절은 그럭저럭 고기잡이를 나갈만 했습니다. 알 수 없는 게 바다라고 바다는 참 변덕스러웠지요.

“이를 어째!”

파랑이 아버지는 오전 내내 잡은 고기를 모두 바다로 다시 내어주어야만 했습니다. 갑자기 밀려온 파도에 작은 떼배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파도를 뚫고 육지로 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파랑이 아버지는 평생 함께 해온 떼배와 함께 젊은 나이로 바닷속 용궁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산통을 겪던 파랑이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알지도 못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때였지요. 동네 촌장이 급히 파랑의 집을 찾았습니다. 파랑이 아버지의 시체가 바닷가에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파랑이 어머니는 참 기가 막혔습니다. 네 명의 아이를 두고 떠난 남편도 그렇지만, 어떻게 아이를 낳는 날에 남편이 용왕의 제물이 되다니요.

“네 이름은 ‘파랑’이라 하자. 참 고약한 내 딸이구나.”

태어날 때 파도에 휩쓸려 죽은 아버지의 딸이란 뜻이었어요. 파랑이 어머니는 산모의 몸으로 남편을 저승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몸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어요. 울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울며 배고프다고 보채고, 갓난아이까지 있었으니 어떻겠어요.

“여보! 나보고 어쩌라고.”

남편을 앗아간 푸른 바다를 보며 파랑의 어머니는 그렇게 한숨 쉬었어요. 세상의 종말이라도 올 것 같았는데, 모진 게 사람의 목숨이었습니다. 파랑의 어머니는 어린 파랑이를 바닷가 모래밭 위 구덕에 두고 물질을 해야 했습니다. 젖먹이 파랑은 참 신기하기도 했어요. 어머니가 물질을 끝내고 올 때까지 새근새근 잠을 자든가 혼자 꼼지락 거리면서 놀았습니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물질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어머니, 저도 물질을 해보고 싶어요.”

어느 덧 파랑은 다 큰 처녀가 되었어요. 열일곱의 참 아리따운 처녀로 큰 것이지요.

“너희들에겐 이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

파랑의 어머니는 힘든 물질을 아이들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해녀의 삶은 결코 녹녹하지 않았거든요.

“파랑이는 예쁘기도 하지만 어쩜 저렇게 물질을 잘 한담. 우리보다도 낫네.”

이웃 해녀들의 말이었어요. 파랑이가 바다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인어가 수영을 하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어디 한 곳 막히는 데가 없었지요.

“휘이익~~”

파랑은 참았던 숨소리를 파도 위로 날렸습니다. 물결을 타고 숨비소리는 멀리 울려 퍼졌지요. 파랑의 숨비소리는 마치 돌고래가 우는 소리 비슷했어요. 그 때문일까요. 파랑이 물질을 하는 곳에는 언제나 돌고래와 바다 생물들이 함께 했습니다. 파랑의 바다 속 친구들이었어요. 가끔 돌고래의 등을 두 손으로 잡으면 돌고래는 참 반겼습니다. 그때마다 돌고래는 파랑을 어디론가 데려가려 했습니다.

“나와 가고 싶은 곳이 있구나.”

파랑은 돌고래에게 마음을 전했습니다. 돌고래는 꼬리를 흔들고 물을 내뿜으며 그렇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이제 스무 살이 된 파랑에겐 물질이 너무나 익숙했습니다. 바다가 삶의 터전이면서 놀이터이기도 했지요. 집에 있으면 답답하다가도 바다에 나와 물질만 하면 참 개운했습니다.

“돌비야, 왜 그래.”

돌비는 파랑이가 물질을 할 때마다 옆에 와서 노는 돌고래 이름입니다. 파랑은 돌고래를 돌비라 불렀어요. 돌고래의 유영 모습이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았거든요. ‘돌고래 하늘을 날다.’라는 뜻이라나요.

돌비는 여느 날과는 달리 파랑이 물질을 할 때 바싹 다가와서 어디로 가자고 졸랐어요. 그것도 평상시와는 다르게 절실히 요구하는 것이었어요. 파랑은 물질을 그만두고 돌고래 등에 매달렸어요.

“아니, 이곳은 어디야.”

파랑이 돌고래 등에 매달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어느 새 처음 보는 마을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파랑이 사는 마을보다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그리고 처음 보는 건물이 눈앞에 있었어요. 동그란 모습에 그림 같은 건물이었어요. 파랑은 어리둥절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돌비는 그 사이 몇 번 물 위로 치솟더니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어요.

“아가씨, 파랑 아가씨지요?”

“아니, 누구세요?”

“저는 돌비섬 궁전에 살고 있는 임금님의 시중 선이입니다. 아가씨를 모셔오라는 분부입니다.”

시중 선이는 앞서서 걸었어요. 파랑은 참 의아했어요.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선이를 따라 걸어 궁전으로 들어갔어요. 궁전은 깨끗하고 단아하면서도 신비로 왔습니다.

“어서 오너라.”

마치 뱃사람처럼 생긴 남자가 면류관을 쓰고 문 밖에 나와서 파랑을 맞이했어요.

“파랑아, 어서 오너라.”

면류관을 쓴 사람은 돌비섬 궁전에 있는 임금님 같았습니다. 그런데 참 다정하게 파랑을 맞이했습니다. 파랑은 모든 게 신비로와 아무 말도 못하고 이끄는 데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금빛 장식과 호박과 진주가 온통 방안에 가득 있었지요. 임금님은 파랑에게 연옥으로 된 파란 색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습니다. 곧바로 맛있는 음식이 나오고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파랑아, 이렇게 잘 커줘서 고맙구나.”

임금님은 그렇게 말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두 눈 가득 눈물을 흘리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인간세계와 돌비섬은 세계가 달라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이니라. 네가 보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먼발치서 커 가는 모습만 볼 뿐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구나. 내가 네 아버지이다.”

“예~.”

파랑은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네가 태어나던 날이었다. 나는 가족을 위해 바다로 일을 나갔단다. 그러나 갑자기 파도가 일어나며 나는 바다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단다. 그런데 한참 후에 눈을 떠보니 내가 이곳에 있더구나. 돌비섬 용왕님이 나를 건져 낸 게야.”

“그럼 어떻게 돌비섬 용왕님이 되셨어요?”

파랑은 모든 게 궁금해졌다.

“돌비섬의 규칙이 있단다. 돌비섬 용왕은 어부나 해녀만 할 수 있단다. 그것도 평상시에 긍정적으로 열심히 삶을 이어간 사람이어야 한다. 마침 내가 지난 용왕님의 뒤를 잇게 된 게지.”

파랑은 아버지를 돌비섬 용궁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파랑은 동해에서처럼 물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시녀들이 있어서 모든 수발을 다 들어주었지요.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언니들 생각이 나며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돌비야!”

파랑은 궁전에서 나와 돌비를 불렀습니다. 돌비에게 고향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파랑의 몸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두 다리가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변하더니 꼬리에서 비늘이 돋아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인어가 된 것이었습니다.

“안 돼!”

파랑은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슬픔에 눈물을 흘렀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울었던 것일까요. 어디선가 돌비가 물살을 헤치며 파랑에게 다가 왔습니다.

“돌비야. 나 어쩌면 좋아.”

어머니와 언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파랑은 너무나 슬펐습니다. 인어로 변한 파랑을 어머니와 언니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파랑은 그만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어요. 돌비가 힘차게 물 위로 솟구치며 어디로 가자고 했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인어가 된 파랑도 고향으로 바로 헤엄쳐 갈 수 없었어요. 아무리 몸부림 쳐도 돌비섬을 벗어날 수 없었어요. 용궁과 인간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아버지가 어머니와 파랑을 보러 오지 못한 사연을 파랑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파랑이 돌비를 타야만 고향에 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돌비야, 나 고향에 가고 싶어.”

파랑은 울면서 돌비에게 매달렸습니다. 돌비는 다시 물 위로 솟구치더니 파랑을 등에 타라고 하였습니다. 파랑은 돌비의 등에 매달렸지요. 꿈처럼 잠시 공중을 나는 것 같더니 어느 덧 고향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니!”

파랑은 어머니를 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저 멀리 어머니의 모습은 보였지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파랑은 목 놓아 울었습니다. 파랑이 눈물을 흘리자 파랑의 몸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함부로 인간의 세계로 갈 수 없다는 돌비섬의 법도를 어겼기 때문이지요. 파랑의 몸은 모래로 변하더니 백사장 위에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파랑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르고 모래조각이 되었습니다.(이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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