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육지속 섬마을에 있던 학교, 원주 지정초등학교 안창분교장

1948. 09. 01. 지정초등학교 안창분교장 설립인가
1952. 12. 17. 안창초등학교로 승격(6년제)
1989. 03. 01. 지정초등학교 안창분교장으로 격하
1993. 03. 01. 지정초등학교로 통합, 폐교, 총37회, 698명 졸업

김시동 승인 2020.07.10 18:02 | 최종 수정 2020.07.13 17:18 의견 0

육지속 섬마을에 있던 학교

지정면 지정로 572번지 능촌에 있던 안창분교는 1948년 지정초등학교 안창분교 장으로 설립인가를 받은 뒤 1993년 소규모학교 통·폐합 계획에 따라 폐교 되었다. 학교가 존재하는 동안 37회 698명 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25년 전인 1993년 문을 닫았다. 지금은 문화예술공간인 살구나무예술촌 (대표:박전하)으로 바뀌었다. 학교 교정을 그대로 사용하는 예술촌은 농촌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연과 작품전시, 가족 모임, 세미나, 예술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역의 작은 학교는 마을공동체의 상징이자 공동의 공간으로 구심점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학교가 폐교된다는 것은 농촌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고 주민들의 소통 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살구나무예술촌은 폐교된 작은 학교의 활용 을 통한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 커뮤니티로서 핵심 시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안창초등학교 승격, 개교식 1953.06.18
안창초등학교 낙성식 1953


김익영(83세)

지정초등학교 13회 졸업

안창초등학교 교사, 지정초 교감으로 근무

부론초, 용암초, 우산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

안창분교는 연안 김씨 종중에서 땅과 초가집을 희사해서 시작된 학교이다. 안창리 는 연안 김씨 집성촌으로 옛날에는 섬강을 따라 안창리 대부분의 땅이 연안 김씨 종중의 소유였다. 처음 학교는 분실로 김익영 선생의 집 뒷 동산에 있었는데 옛날 초가집 건물이라 지금의 살구나무길에 있는 학교 터를 내줘서 짓게 되었다. 해방 후에 미국의 원조 자재로 간이학교를 지어 정식으로 안창분교를 개교했다.

안창초등학교의 교사를 지낸 김익영 선생은 지정초등학교 를 졸업했다. 당시에는 안창 분교가 개교하기 전이라 강을 건너 지정초등학교를 힘들게 다녔다. 지정초등학교 교감 시절에 안창분교가 통합되었 는데, 그때는 많은 지역 주민 들이 반대하는 것을 지정초등 학교와 통합하는 것이 아이들 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학부형 들을 설득해서 통합을 했다.

안창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김익영 선생은 지정초등학교 교감과 용암초, 부론초, 우산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직했다. 안창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학 생들이 원주시·군에서 개최한 학력대회 성적이 최고로 좋았었다. 6학년 시험을 지 정초등학교에서 보는데 1등에서 5등까지 다 안창에서 차지해서 장학금을 받았다. 지정중학교가 없을때라 문막중 학교로 갔는데 입학할 때 안창 출신 아이들이 1등 부터 10등까지 싹쓸이 하기도 했 다. 당시에는 중학교도 시험을 보 고 가는 입시제도라서 안창분교 학생들도 밤낮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 선생님들은 집으로 까지 찾 아가 밤 늦도록 공부를 지도하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대 출신 도 있고 꽤 많은 인재가 배출되 었다.

퇴임 후에 고향인 안창에서 살고 있으니 당시 초등학교 제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특히 14회 졸업생 제자들이 많이 온다. 그 시절에는 선생님에 대한 대우가 워낙 좋 아서 마을에 가게 되면 저녁에는 학부모들과 술도 많이 마셨다. 학부모들과 선생 님 사이의 격이 별로 없었다. 모심기 할 때나 타작할 때는 꼭 불러서 함께 밥도 먹으며 이웃처럼 친하게 지냈다.

안창초등학교 제1회 졸업 기념사진 1953

김익영 선생과 함께 있던 제자의 학교 이야기

30리 길, 선생님의 이삿짐을 날라주던 마을 주민들

학교에 등교 할 때는 운 동장 정리를 위해 보자기 에다 강가의 모래를 퍼날 랐다. 옛날 학교 생활이란 반은 공부하고 반은 일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주 민들이 참여 해서 학교를 가꿨다. 당시 정현정 교장 선생님 이라고 계셨는데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정 말 애를 많이 썼다. 조그 만한 종이에 받아 쓰기도 매일하고 공부를 못하면 깜깜한 밤까지 붙잡아 놓 고 다 할 때까지 가르쳐 주셨다.

교장 선생님 고향이 송암인데 이사를 갈 때는 동네 사람들이 이삿짐을 지고 30리 길을 날라다 주었다. 어느 선생님 보다 열정적으로 밤늦게까지 남아서 공부를 가르쳐주고 하신 분이 없었으니 졸업한 학생들이나 마을 주민들에게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정현정 선생님이 교장을 할 때 김익영 선생도 함께 근무했다.

안창분교 자료앨범 


학교를 짓기 전에는 마루바닥에 초칠하고 나무의자를 놓고 공부했다. 나무로 지은 건물이라 마루바닥 아래로 통풍구를 해 놓는데, 그곳에 쥐약을 놓으면 개가 모르고 그것을 먹고 죽어 썩으면 그 냄새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겨울에는 집 집마다 장작을 한짐씩 해서 학교에 가져 갔다. 그때는 섬강에 다리가 놓이지 않아서 간현같은 마을에서 학교를 오려면 배를 타 고 건너와야 했다.

 

이규명(82세)

1회 졸업생

안창리 월운마을, 빛고을 마트

이규명씨는 안창분교 1회 졸업생이다. 지정초등학교를 다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안 창분교 6학년으로 전학을 와서 1953년도에 졸업했다. 분교가 생기면서 3학년부터 는 지정초등학교를 다니고 그 아래는 안창분교를 다녔다. 1회 졸업할 때는 21명이 다니다가 1명이 중퇴하고 20명이 졸업했다. 현재의 학교 터는 연암 김씨와 전주 이씨 종중에서 희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안창리는 육지속의 섬이라 할 정도로 강으로 고립된 오지 마을이었다. 비만 오면 강을 건널 수가 없었고 문막중학교를 가려면 뺑뺑 돌아가야 갈 수 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수박이나 담배, 배추같은 특수작물을 많이 했다.

지금은 몇 명 남지 않았지만 1회 졸업생 5~6명이 1년에 한번 정도 모여서 동창회 를 한다. 동창 중에 군인 출신의 김해용이라는 친구가 지정초등학교에서 동창생 명단을 뽑아서 연락을 하면서 모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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