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호저면 고산초등학교 입암분교장

화전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칠판을 지고 옥산강을 건너다.
1969. 3. 1 고산초등학교 입압분교 개교
1990. 3. 1 고산초등학교와 통폐합

김시동 승인 2020.07.10 17:49 | 최종 수정 2020.07.10 19:10 의견 0

화전민의 아이들이 꿈을 키우던 추억의 학교

호저면 고산리 깊은 산속 곤의골에 위치한 고산초등학교 입암분교장은 1969년 3월 개교하여 1990년 소규모학교 통폐합 계획에 의해 고산초등학교에 통폐합되었다. 곤의골(곤이골)이라는 지명은 ‘곤란을 당했지만 의롭게 사는 사람들’ 이란 뜻을 갖 고 있다. 곤의골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천주교 신자들이 기해박해 (1839)를 피해 들어와 살면서 만들어진 천주 교우촌으로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곤의골 공소가 있다. 지금도 매월 둘째주 일요일에는 1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미사를 본다.

입암분교 1974


입암분교는 곤의골에 살던 화전민 가족의 아이들을 위해 지어진 학교로 고니골 농장 조영준 대표는 입암분교 1회 졸업생이다. 6남매 중 5남매가 이곳에서 공부 하고 뛰어 놀았던 추억의 학교였다. 학교가 한창 번성할 때는 작은 마을 임에도 불구하고 많을 때는 전교생이 120명에 달할 정도로 북적거렸다. 입암분교는 고산리 5·6반, 고니골에 살던 아이들이 주로 다녔다. 대부분은 1960년대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 이곳 고니골로 들어와 척박한 산을 개간하고 농사짓고 살던 화전민의 자녀들이었다. 화전민이란 산과 숲에 불을 놓아 그 땅을 경작 하며 생계를 유지하 는 농민을 말한다. 1950~1960년 대에는 농경지가 없거나 생계가 어려운 농민과 도시의 실업자가 산 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며 사는 경 우가 많았다. 그러나 1970년대 중 반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정부의 화전민 이주정책으로 많은 사람 들 이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떠났 다. 이곳 고니골도 정부의 화전민 이주 정책으로 학생수가 많이 줄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 후반 이 주 정책의 규제를 받기 전에는 80여 가구가 살았지만 현재는 15가구도 채 남지 않았다.

입압분교 운동회 1973


조영준

입암분교 1회 졸업생

원주한지양잠클러스터사업단, 고니골 농장 대표

고니골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조영준 대표는 입암분교 1회 졸업생으로 자신이 졸업한 학교에서 원주한지양잠클러스터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고니골에서 4대째 양잠업을 하고 있는 조영준 대표와 마을주민 등으로 구성된 원주양잠클러스트사업단은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향토산업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양잠산업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입압분교를 핵심공간으로 활용하여 양잠에 관해 재배, 생산, 가공, 유통, 관광을 한곳에서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양잠테마단지로 조성되고 있다. 입압분교는 지난 2011년 양잠산업 방문자센터로 조성되어 도농교류의 매개 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방문자 센터에서는 양잠사업단의 거점이 되는 사무실을 포함해 양잠농가와 전문가들이 참여해 다양한 양잠음식 및 제품 연구·개발을 위한 뽕나무기능성연구회 연구 공간이 있으며 방문자 체험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고니골 작은 학교에서 배우고 자란 조영준 대표는 사업단을 이끌고 새롭게 복원된 공간을 활용해 농촌과 도시의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전교생 두명의 졸업을 끝으로 문을 닫다.
1969년, 호저면 고산리 깊고 깊은 산속 고니골(곤의골)에 개교한 입암분교는 한때 120여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다녔다. 하지만 1970년대 화전민 정비사업 이후 마을 주민이 크게 줄어들고 결국 6학년생 두명과 선생님 한명이 학교를 지켜왔다. 폐교되는 날 마을 주민들은 돼지를 잡고 음식을 마련해 마을문화의 구심이었던 학교의 마지막 아쉬움을 달랬다. 선배들을 보내는 송사와 졸업식 노래를 불러 줄 후배들이 없어 마을 주민들이 함께 부르는 고향의 봄 노래로 졸업식을 마치는 폐교의 마지막 모습에서 농촌교육의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입암분교 1970
 
1970년대 고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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