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 묵호 발한동의 극장이야기

3개의 단관극장을 경영한 묵호 최고 부자, 이상출
문화극장, 묵호극장, 보영극장의 기억과 기록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충무로에서 개봉 프로를 가져오다.
고려목재 이형배

강원아카이브 승인 2021.03.05 13:29 | 최종 수정 2021.03.05 13:36 의견 0

1960년대 묵호읍에서 3개의 극장을 운영하던 내로라하던 부자, 고려목재소 이상출 사장의 극장에 얽힌 이야기를 아들 이형배 씨에게 들어본다. 현재 이형배 씨는 동해 평릉동에서 아버지가 해오던 고려목재를 대를 이어 경영하고 있다. 단관극장은 스크린이 하나인 아날로그 필름 영화관을 말한다. 지금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밀려나 거의 사라진 추억의 영화관이다. 1960년대 묵호읍에는 4개의 단관극장이 있었다. 제일 먼저 지어진 극장이 동호극장이다. 그 다음으로 게구석 앞에 문화극장(현재 태평양수산 자리), 발한 삼거리의 묵호극장, 보영백화점의 보영극장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1960년대 문화극장_ 발한지구 아카이브 자료
문화극장이 있던 현재의 태평양수산 2021

이상출 사장은 1960년대 신축하는 문화극장에 건축자재를 납품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극장 공사에 자재를 납품하다가 건축주의 자금 사정으로 인해 극장을 인수하라는 제안을 받아 극장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몇 년 차이로 묵호극장을 개관했다. 1960~70년대 묵호는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징어, 명태잡이로 호황을 이루던 곳이다. 묵호극장이 있던 발한 삼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와 공연, 쇼를 보기위해 몰려들었다. 묵호극장은 난방용으로 사용하던 톱밥으로 인해 1978년 화재로 전소되면서 발한 삼거리의 추억도 영화처럼 막을 내렸다. 이상출 사장은 남아있는 문화극장과 보영극장을 80년대 후반까지 운영했다.

1960년대 묵호극장_ 발한지구 아카이브 자료
묵호의 극장은 1980년대 후반에 모두 없어지거나 폐관되었다. 지금의 묵호지구대 옆의 보영극장은 보영백화점에서 지은 극장으로 3년 정도 운영되다 경영난으로 이상출 사장에게 인수되었다. 현재 보영극장은 극장의 원형이 온전하게 남아있고 영사장비와 필름 등의 관련 자료가 남아 있는 동해시의 유일한 옛 극장건축이다. 보영극장은 단관극장으로 전관을 운영 하다가 2층으로 구조를 바꾸었다. 1층은 나이트클럽으로 개조하고 2층은 두칸으로 나누어 2관으로 영화를 상영했다. 보영극장은 당시 극장 원형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동해시의 유일한 아날로그 극장건물이다.
1970년대 보영극장_ 발한지구 아카이브 자료

「당시 읍내의 중요한 각종행사는 시내 중앙통에 자리했던 묵호극장에서 치렀다. 묵호극장 옆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김형원 강원도의원은 '영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에서 촬영기사의 어린 친구로 나오는 소년 <토토>처럼 본인도 묵호극장 영사실에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기억했다.(동해문화원 ‘이야기가 있는 묵호’)」

보영극장 2021

이형배 씨에게 들어보는 그 시절 극장의 추억.「당시 목재소와 철물점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묵호에서 알아주는 유지였어요. 덕분에 친구들에게 대장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극장도 공짜로 들어가게 해주는 등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보영극장 같은 경우, 쇼 같은 공연을 하면 복도와 계단에 사람들로 꽉 차 지나갈 수가 없었어요. 영화배우 장동휘, 최무룡, 가수 박상규 씨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오고 박상규씨는 우리집에서 밥도 같이 먹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 때는 극장의 마지막 상영이 밤 9시였어요. 매표소에서는 누나가 입장권을 팔았죠. 마지막 상영이 들어가고 9시 20분 정도면 집으로 그날 판매한 돈을 갖고 들어와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새도록 돈을 셀 정도로 수입이 좋았어요.」

보영극장 영사실 2021
보영극장 영화상영 시간표 2021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충무로에서 개봉영화를 가져오다.

개봉하는 영화필름을 구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충무로에 갔다면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북평에 비행장이 있어 우리 형제들을 태우고 충무로 영화사에 가서 ‘미워도 다시 한번’, ‘빨간 마후라’ 같은 프로를 먼저 달라 해서 가져오고 그랬다. 강릉 보다 먼저 개봉하는 영화가 왔으니 강릉 사람들도 보러 왔다. 묵호의 극장은 모두 개봉관이었다. 당시 극장과 영화사의 수입 비율이 6:4였다. 극장의 수입이 60%, 영화사가 40%를 가져갔다. 영화사에는 필름을 가져오는 출장원이 있었다. 출장원이 영화 매표 현황을 확인하고 저녁마다 현금을 함께 계산한다.

「그때는 출장원이 힘을 좀 썼지요, 자기들이 알아서 공짜 구경 시켜주고, 그리고 예를 들어 매출 100만원에서 40만원을 영화사에서 가져간다면 출장원들은 월급쟁이들이니 90만원 매출 한 것으로 하자 그러고 나머지는 자기 용돈으로 쓰는 거지. (웃음). 나름 끗발도 쎄서 요정 같은 술집에서 공짜 술도 먹고, 옛날에 그런 일이 많았어요.」

1970년 보영극장에서 개최된 영동지구 가요 콩크르대회 포스터

「차에 마이크를 달고 친애하는 묵호 군민 여러분! 저희 문화극장에서 누구 누구 쇼 한다고 한 바퀴 돌면서 삐라 같은 것을 뿌리면 아이들이 얼마나 따라오는지. (웃음)」

묵호등대공원에 설치된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기념비

- 이 내용은 강원아카이브사회적협동조합에서 2020-2021 동해시 발한동 도시재생 지역자원 아카이브 구축 사업으로 진행된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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