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 학교] 금대초등학교 일론분교 1967-1985

1967. 12. 06 개교
1985. 03. 01 폐교
강원교육복지재단 2019강원폐교 역사자료 아카이브 구축사업

강원아카이브 승인 2020.12.21 11:57 | 최종 수정 2020.12.21 11:58 의견 0

금대리 일론마을_ 일론분교가 있던 치악산 국립공원 금대리 일론(日論)마을은 금대계곡 깊은 곳에 있는 마을로 흘론, 흘른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치악산 영원산성에서 김제갑 장군이 왜병을 크게 무찔렀는데 이 때 수많은 장졸들의 피가 계곡에 흘렀다고 하여 흘론, 흘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골짜기에 있는 논이라고 해서 실(谷)+논(畓)>실논>실론>일론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대리 일론마을 성황숲과 성황당 2019


1976년 벽지학교 어린이 원주견학

금대초등학교 일론분교 어린이들이 원주로 나들이를 나온 모습이다. 1970년대 금대리 산골마을 작은학교에서 원주시내는 쉽게 나오지 못하는 먼 도시였던 것이다. 원주 로타리클럽에서 지원한 행사로 일론분교 학생들은 원성군청과 원주청소년수련관, 강원감영, 원주역 등을 견학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벽지학교 원주견학 _1976년 원주역, 원주로타리 클럽


윤ㅇㅇ(60세), 2회 졸업생, 금대리

옛날 학교를 짓기 전에는 친구네 초가집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학교가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윤대범씨는 1학년 까지는 초가집에서 임시로 공부하다 분교가 지어지면서 입학을 했다. 당시에 이곳에는 100가구 정도, 300여명 정도의 주민이 살았다. 금대 본교에는 700여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다. 분교 초창기에 고생하신 조철화 선생님이 생각난다. 분교장으로 부임해서 벽돌도 쌓고 하면서 애 쓰신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금대리 계곡이 치악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을 때였다. 여름 휴가철과 주말이면 놀러온 사람들로 계곡이 꽉 찼었다. 특별히 취사에 대한 통제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계곡 여기 저기에 술병이 막 널려있었다. 빈병이 너무 많으니까 지게에 주워 담아 고물상에 갔다 팔고 했던 일도 떠오른다.

금대리 일론분교 교정에서 열린 염소, 토끼 이양식_1974년

인천일보 1974. 5. 20

낙도 어린이들의 도시 나들이

‘낙도(落島)’의 사전적 의미는 ‘뭍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이다. 과거의 시선은 물리적 거리와 문명의 혜택은 반비례한다고 보았다. 정부나 기업은 외딴 섬 주민을 고립적 존재로 간주하고 그들에게 문화적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애썼다. ‘낙도 어린이 서울나들이’는 그 일환이었다. 첩첩산중 두메산골도 오지 중의 오지였다. 강원도 산간벽지 아이들의 서울나들이 코스에는 인천 바다 구경이 포함되곤 했다. 74년 5월 20일 강원도 치악산 기슭 일론분교 46명 어린이들은 럭키(현 LG)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창경원, 남산공원, 방송국 등을 둘러본 후 인천에 도착해 바다와 도크를 구경했다. 생전 처음 배를 본 아이들은 “배 위에 또 집이 있네”하고 연신 탄성을 질렀다.

정규남 인천시장은 아이들에게 세계아동문학전집을 선물로 주었다. 낙도 아이들의 뭍 나들이 프로그램은 기업 이미지를 위해 주로 기업체들이 주관했지만 특별한 인연으로 아이들을 초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74. 5. 20 인천일보 http://www.incheonilbo.com)

금대초등학교 일론분교_ 1974년 주식회사 럭키 초청 서울 수학여행
금대초등학교 일론분교_ 1974년 주식회사 럭키 초청 서울 수학여행


[2019강원폐교 역사자료 아카이브 구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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