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 학교] 원주지역 만세운동의 시발점 부론면 옛)노림초등학교

노림의숙의 전신
부론면 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자
원주지역 만세운동의 시발점

강원아카이브 승인 2020.12.09 16:43 | 최종 수정 2020.12.21 12:01 의견 0

1915. 노림의숙 설립

1938. 08. 31 부론공립심상학교 부설 노림간이학교 정식 인가

1938. 09. 01 한씨 문중으로부터 현 부지를 기증받아 개교

1945. 09. 15 노림초등학교 승격

1952. 06. 20 노림고등공민학교 임시 개교

1953. 03. 25 노림고등공민학교 폐교

1955. 10. 16 교사 신축 준공

2004. 03. 01 부론초등학교에 통합, 폐교

옛 노림초등학교 전경 2019

노림초등학교는 실제 노림의숙(魯林義塾)으로서 원주시(옛 원성군) 부론면 노림리(魯林里)에 있는 노림초등학교의 전신이다. 노림리는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문중 마을로 실학파(實學派) 한백겸(韓百謙) 형제의 후손이 살고 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부로면 사무소가 이곳에 있었다. 3.1운동 당시에는 흥원창(興原倉)이 설치되어 있어 서울 다니는 뱃터가 흥호리에 있었다. 그후 1936년 병자년 홍수 이후 현재의 법천리로 옮겼다. 문막과 흥호리를 동서로 약 4km 정도에 두고 그 중간에 있는 노림리라는 마을에서 일제 초기인 1915년에 학교를 세운 것이 노림의숙이었다. 문막에는 보통학교가 건립되었는데도 노림의숙을 세운 것은 다른 경우와 같이 일제교육에 항거한 이유였다. 때문에 여기에서 채용한 교사들은 모두 항일 사상가였다. 3.1운동 당시에 홍남표(洪南杓), 어수갑(漁秀甲), 한진충(韓鎭忠)이 교편을 잡고 있었다. 홍선생과 어선생은 양평과 김포 사람이었으며, 이 두 교사는 평소에도 사상교육을 많이 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날 무렵 홍성생과 어선생은 미리 고종 인산(因山)에 참례한다는 구실로 서울에 올라갔다가 돌아올 때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와서 졸업생 40여명에게 나누어 주었다

1959년 노림국민학교 동창회원 일동(1~11)

노림학교는 1915년에 설립된 학교로 그해 3월 22일 제1회 졸업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날 졸업생은 40명이었는데 홍선생과 어선생은 졸업생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준 뒤에 바로 서울로 일을 보러 간다고 다시 가버렸다. 그런데 3월 27일 부론면 원주군수 오위영이 민심수습차 출장을 나왔다. 흥호리에서 시국강연을 듣던 졸업생들은 몇 명이 즉석에서 항거하려다가 부론면 서기 유 모씨에게 쫓겨서, 그길로 노림리에 온 졸업생 한범우(韓範愚)의 주동으로 한돈우, 한태우, 한민우, 정현기, 김승수, 김일수 등 7명이 모여서 ‘대한독립만세!’의 깃발을 들고 나와서 군수가 돌아가는 길목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1974년 노림국민학교 구교사

당나귀를 타고 돌아가는 군수가 나타나자 고삐를 잡고 ‘철원군수도 만세를 불렀다니 원주군수도 만세를 부르라’고 요구하였고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놓고 논쟁을 벌이며 계속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오군수가 말하기를 ‘어른들이 부르면 모르되 너희들과 점잖치 못하게 내가 어찌 같이 부르겠느냐’고 말하고 ‘자, 이만하면 되었으니 그만들 두거라’ 하였다. 그후 얼마 안되서 문막헌병파견소 아리무라 상병등과 채진묵 헌병보조원이 달려와서 한범우는 즉석에서 체포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피신을 했으나 정현기는 흥호리에 숨어있다가 채진묵 헌병보조원이 상주모양으로 상복을 입고 온 것을 모르고 나왔다가 잡히고 말았다.

노림리 노숲마을2016


노림초등학교는 1938년 8월 31일 부론공립심상학교 부설 노림간이학교로 인가되었다. 그해 9월 1일 한씨 문중으로 부터 현 부지를 기증받아 개교했으며 1945년 9월 15일 노림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 초대 교장으로 한기학씨가 부임했다. 1996년 3월 노림초등학교로 개칭되어 오다가 2004년 소규모학교 통폐합 계획에 의거하여 부론초등학교에 통합, 폐교되었다.

심상천(6회), 이묘임(5회) 부부

노림초등학교 동문

노림초등학교 건너편에 살고 있는 심상천, 이묘임 부부는 학교 동문으로 심상천씨는 6회, 이묘임씨는 5회 졸업생이다. 부부는 원래 한 학년이었으나 3학년 때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심상천씨는 1년을 늦게 졸업했다. 전쟁 때에는 인민군이 내려와 학교에 들어온 적도 있었고 때로는 인민군과 국군이 교대로 마을에 오기도 했다. 전쟁으로 인해 학교가 불타 없어지자 자갈을 줍고 흙벽돌을 찍어 학교를 짓는 일에 참여했다.

이묘임 씨 노림국민학교 제5회 졸업사진

당시 학교는 학사운영을 위해 월사금이라는 후원회비를 내서 그것으로 교사들의 봉급을 지급했다. 마분지 같은 종이에 표시를 하고 등사를 해서 월사금 확인서를 만들었다, 월사금을 못내는 학생들은 조회시간에 앞으로 불러 세우니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교를 못 다니는 사람이 마을에 절반이 넘을 정도로 배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심상천씨는 추운 겨울 흥호리에서 학교까지 먼 거리를 등교해야 했다. 학교에 올 때는 불에 달군 돌을 들고 다녔다.

심상천씨는 “종이가 없어 도배지를 공책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고 미군의 구호물자로 연필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그 시절에는 치약도 모르고 자동차도 구경 못하던 시대였으니,”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7학급까지 늘어 학교도 신축하고 초가지붕과 한복도 없어졌다.

심상천 씨 노림초등학교 제6회 졸업사진


#기록 #교육공동체 #강원폐교 #노림초등학교 #부론면 #원주시 #강원도 #강원아카이브사히적협동조합

저작권자 ⓒ한국아카이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