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영월군 북면 마차리 폐광촌 아카이브05

중학생이던 16살 소년은 총을 들었다.
전병태(83), 박순옥, 국가유공자, 마차1리

강원아카이브 승인 2020.12.04 16:17 | 최종 수정 2020.12.23 12:31 의견 0

중학생이던 16살 소년은 총을 들었다.

미군부대 근무 당시 전병태씨

평창 대화가 고향인 전병태씨는 군 제대 후에 이곳 마차리에서 광부의 삶을 시작했다. 대화중학교 3학년 때 6.25 한국전쟁이 발발해 영주로 피난을 갔다오니 집과 마을은 모두 불타 없어졌다. 결국 어머니와 둘이 어렵게 살다 춘천으로 일을 찾아 갔다. 그때 나이 16살 되던 해였다.

옛 추억이 담긴 전병태씨의 사진들

우연한 기회에 일제시절에 배운 일본어 실력이 도움이 되어 춘천의 미군부대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미 8군 통신대 교환원으로 일을 하다 입영영장이 나와 군에 입대하였다. 미8군의 경력은 정식 군인으로 인정을 받지못했기 때문이다. 제대 후에 이곳 마차리로 일을 찾아 온 것이 지금의 고향이 되었다.

전병태씨의 아내

아내 박순옥씨는 원주 문막이 고향이다. 마차리에서 함께 일하던 외사촌 오빠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광산에서는 장공기라는 돌 뚫는 기계를 다루었다. 굴 파는데 있어서 제일 필요하고 중요한 장비인데 조수를 했다. 장공기로 하루 종일 구멍을 뚫는데 한 30군데 이상 뚫고 구멍에 폭약을 터트리는데 그거 하나 터트리면 산 전체가 무너져 내려 앉는 것 같다. 밑에서 부터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수직으로 파 올라 갔다. 발탄 해 놓으면 돌이 밑으로 빠져 내려가고 장비들이 와서 퍼 실으면 싹 내려간다. 내려가면 또 거기서 발탄하는 작업을 해 왔다.

사진찍는 것을 좋아해서 옛 사진들이 앨범에 빼곡하다. 지금도 예전에 사용하던 카메라를 보관하고 있다. 광산일을 그만둔 후에는 신문보급소를 운영하며 마을이장을 했다. 2004년까지 30년 동안 이장일을 하면서 마을을 위해 봉사했다. 마을 앞에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영월 마차리폐광촌 아카이브2017]

전병태, 박순옥 부부

전병태, 박순옥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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