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영월군 북면 마차리 폐광촌 아카이브02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고장, 마차리
- 절차탁마(切磋琢磨)「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학문(學問)이나 인격(人格)을 갈고 닦음」

강원아카이브 승인 2020.12.02 17:38 | 최종 수정 2020.12.23 12:30 의견 0

마차리는 북면의 면소재지로 동으로 거운리, 문산리와 접하고 서쪽에는 연덕리와 문곡리가 있으며 남으로는 삼옥리, 영흥리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공기리와 평창군 미탄면과 맞닿아 있다. 골마차, 절골, 분덕이, 솔치, 요봉, 학전이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는 농촌 마을이다.

마차리 2017

옛날, 광산이 개발되기 전의 마차리는 여섯집 정도가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일제시대 광산이 개발되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검은 진주를 캐기 위해 모여든 이주 1세대가 하천을 메우고 마을을 조성하면서 마차리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마차리는 산 위에서 내려다 보면 맷돌 모양의 지형을 품고 있다. 맷돌이라 하면 갈고 닦는 것을 의미 하는데 이것을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지형으로 보았다.

학문을 갈고 닦아 수양하는 것을 절차탁마 (切磋琢磨)에 비유하는데 이 한자에서 갈 마(磨), 갈 차(磋)를 불러와 마차리(磨磋里)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금의 마차리를 보면 신기하게 갈고, 쪼개고, 파고 하는 것으로 보아 마차(磨磋) 라는 지명의 의미를 해석해 볼 수 있다.

마차리2017

마차리1970

마차리는 1935년 조선전력주식회사에서 건설한 영월화력발전소에 발전용 무연탄 연료를 공급하기 위한 영월광업소가 개광한 대표적인 광산마을이었다. 영월탄전 제1의 광산으로 역할을 해 온 영월광업소는 폐광 될 때까지 연간 8만톤 이상의 무연탄을 생산했다. 마차리 영월광업소가 전성기였을 때는 종업원이 4,000여명에 달하고 20,000여명 의 주민이 살며 마차초등학교에는 1,200여명의 학생이 다녔다. 2017년 현재 마차리에는 90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영월군 북면 마차리폐광촌 아카이브2017-2018

마차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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