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원주 봉산동 모자원을 아시나요?

전쟁미망인 사택
한국전쟁 참전 군경유가족
원주시 봉산동 우물마을

강원아카이브 승인 2020.11.25 20:03 | 최종 수정 2020.12.02 18:23 의견 0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후반, 지금의 무위당 길에는 ‘모자원’이라는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군경간부의 유가족을 위한 전쟁미망인보호 시설이 조성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하꼬방이라고 부르는 판잣집 60호를 세줄로 지어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자녀들이 입주하여 살게 하였다.
원주 봉산동 모자원 앞에서, 하꼬방이라 부르던 판잣집이다.

이곳에서는미용과 바느질 수선 등을 교육하는 기술학원을 운영하여 재기를 도와주었다. 한때는 윤락여성의 자립자활을 위한 부녀직업보도시설로 전환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모자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많은 전쟁미망인들이 발생하면서 부터이다.

모자원 2019

1952년부터 정부는 「조선구호령」 제12조에 의하여 사설모자원의 설립을 적극 권장하는 한편, 1953년 8월 국립중앙전쟁미망인수용소를 설립하였고, 1954년 1월 이를 국립서울모자원으로 개칭, 운영하였다. 1953년 우리나라를 통틀어 24개소였던 모자원은 1958년에 62개소로 늘어나 건국 이후 최고의 숫자를 기록하였다. 이를 설립주체별로 보면, 국립 1개소, 도립 6개소, 법인 36개소, 사설 19개소였고, 수용 인원은 어머니와 자녀를 합하여 모두 7,764명이었다. 그 뒤 1961년 12월 「아동복리법」과 「생활보호법」을 제정, 공포하여 모자원의 운영에 관한 법규를 제정하였다.

모자원 2019
모자원에 살고 있던 전쟁 유가족이 현충탑을 참배했다


이 기사는 2019년 원주 봉산동 도시재생 마을아카이브에 수록된 내용입니다._강원아카이브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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