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강원 원주시 귀래면 마을이야기 ② 고향에 보내 온 편지

한국아카이브신문 창간 특집 마을기록 시리즈 게재.
첫번째 시리즈로 '귀한 과거,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귀래면 마을기록

김시동 승인 2020.09.03 13:22 | 최종 수정 2020.09.03 13:30 의견 0

- 귀래면 너더리 마을(판교)이 고향인 지미령씨의 편지

귀래면 너더리마을(판교) 김시동

살면서 가슴 깊숙이 묻어둔 유년시절이 샘물되어
흐릅니다. 귀한 분이 오신다는 마을 귀래!

태어나 자란 곳의 사진들을 보니 제가 어릴 때 우리 너더리 마을이 참 많이 젊었네요.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둘 셋은 있었고 오가는 이들도 많았고 마을에는 유아원도 있었어요. 그 유아원을 저도 물론 다녔지요.


참 좋은 귀래 너더리의 혜택을 잘 받고 자란 운이 좋은 아이 인 것 같아요. 한 은 유아원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담을 넘어 보니 엄마가 외출을 하시는 거예요. 그때 만 해도 엄마랑 떨어져 있는 걸 싫어했던 저라서 엄마를 따라가겠다며 울어서 엄마에겐 혼쭐이 나고 선생님께서 이끄는 손을 잡고 원으로 들어갔어요. 마을 안에 잘 관리된 한옥 마당은 동네 여자 친구들에게 제일 큰 도화지였어요. 집 주인 할머니께 때마다 혼나면서도 나무 막대 하나씩 들고 마당에 큰 성도 그리고 집도 그리고 집안에 갖고 싶은 침대, 옷, 그리고 먹고 싶은 여러 음식들도 그리며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놀았어요. 흙 마당의 그림들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너더리에서 장터로 나가는 길에서 혼자서 자전거를 타겠다며 내려가는데 브레이크가 어딘지도 모른 채 달리는 자전거에 실려 가다가 동네 아주 머니께 잡아주세요 소리쳤더니 자전거 핸들 가운데를 딱!! 잡아 세워주셨는데 저는 하늘로 슝~ 날아가서... 바닥에 양 무릎을 까이는 상처를 입었답니다. 아직도 그때의 상처는 무릎에 남아있지요.  


새터마을 큰 할아버지 댁에는 촌수로는 육촌인 오빠 둘이 있었는데 저는 친오빠들로 알고 따랐지 뭐예요. 귀래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때에 학교에서 안내문을 나눠주는데 언니, 오빠 있는 사람은 받지 말라며 손을 들어 보라셨는데 전 오빠들을 생각하며 당당히 손을 들고 있었답니다. 정말 얼마나 허물없이 정겹게 어울리며 재미있게 지냈던 그때예요. 지금도 오빠들과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면 여동생 걱정하고 살피는 그 목소리들이 얼마나 포근한지 모른답니다


학교에서 소풍을 급히 가게 되었던 때가 있었는데 상회마다 김밥재료가 동이 난거예요. 그때 저희 집엔 단무지가 땅속 항아리에 저장되어 있었는데 동네 엄마들이 급히 단무지를 사러 오신적도 있었어요. 그땐 학교에 재학생이 120명이 넘었던 때이니까요. 저의 유년시절을 오롯이 품어준 그곳이 바로 귀래입니다.


2015. 7월 너더리마을이 고향인 지미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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