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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영월군 북면 마차리 폐광촌 아카이브04
2020.12.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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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영월군 북면 마차리 폐광촌 아카이브06
한ㅇㅇ(76), 마차1리 언제부터 이곳에서 사셨나요? 3살 때 요봉으로 이사와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당시 요봉은 전체가 사택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광산에서 큰 사고가 나서 이승만대통령이 내려오고 우리가 나가서 태극기를 흔들었던 그때 기억이 나네요. 마차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운동을 많이 했는데 영월, 정선, 평창 3개군 체육
강원아카이브
2020.12.23 12:24
영월군
[마을]영월군 북면 마차리 폐광촌 아카이브05
중학생이던 16살 소년은 총을 들었다.평창 대화가 고향인 전병태씨는 군 제대 후에 이곳 마차리에서 광부의 삶을 시작했다. 대화중학교 3학년 때 6.25 한국전쟁이 발발해 영주로 피난을 갔다오니 집과 마을은 모두 불타 없어졌다. 결국 어머니와 둘이 어렵게 살다 춘천으로 일을 찾아 갔다. 그때 나이 16살 되던 해였다. 우연한 기회에 일제시절
강원아카이브
2020.12.04 16:17
영월군
[마을]영월군 북면 마차리 폐광촌 아카이브04
→고향이 어디신가요영월 한반도면 광전리가 고향인데 3살 때 이곳으로 왔어요. 광산 일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온거지, 마차5리 분덕동에 한국 학생들이 다니던 분덕국민학교가 있었는데 나는 거기 다녔어, 해방 후에 마차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꿨지. 1952년 한국전쟁 때 영장이 나와서 군에 갔어요. 제주도 제1훈련소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전
강원아카이브
2020.12.02 18:21
영월군
[마을]영월군 북면 마차리 폐광촌 아카이브03
→ 마차리에 언제 오셨나요영월 주천면이 고향인데 19살에 마차리에 왔어요. 이곳에서 광산일을 하다 입영 영장이 나와 1962년도에 군에 입대했어요. 12사단 52연대 의무중대에서 33개월 14일 만에 제대하고 광업소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죠. 그때는 영월광업소 직접부로 들어가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청부에서 일을 좀 하다가 사업을 시작했죠,
강원아카이브
2020.12.02 18:05
영월군
[마을]영월군 북면 마차리 폐광촌 아카이브02
마차리는 북면의 면소재지로 동으로 거운리, 문산리와 접하고 서쪽에는 연덕리와 문곡리가 있으며 남으로는 삼옥리, 영흥리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공기리와 평창군 미탄면과 맞닿아 있다. 골마차, 절골, 분덕이, 솔치, 요봉, 학전이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는 농촌 마을이다.옛날, 광산이 개발되기 전의 마차리는 여섯집
강원아카이브
2020.12.02 17:38
영월군
[마을]영월군 북면 마차리 폐광촌 아카이브01
강원 영월군 북면 마차리는 1935년 영월광업소가 개광한 탄광마을로 6~7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지역이었다. 마차리는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상징적인 땅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검은 진주라 불리던 석탄을 캐기 위해 전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나름의 마을을 만들고 고향을 이루며 살아온 희망의 마을이었다. 그러나 1980년
강원아카이브
2020.12.02 17:26
원주시
[마을]원주 봉산동 모자원을 아시나요?
이곳에서는미용과 바느질 수선 등을 교육하는 기술학원을 운영하여 재기를 도와주었다. 한때는 윤락여성의 자립자활을 위한 부녀직업보도시설로 전환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모자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많은 전쟁미망인들이 발생하면서 부터이다.1952년부터 정부는 「조선구호령」 제12조에 의하여 사설모자원의 설
강원아카이브
2020.11.25 20:03
원주시
[원주] 강원 원주시 귀래면 마을이야기 ⑤ 황산마을과 주포리 삼층석탑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황산마을과 주포리삼층석탑 귀래면 주포1리 황산마을 미륵산 황산사터(옛 고자암터)에 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층석탑은 경내에 흩어진 탑재석들을 모아 다시 세운 것이다. 기단은 없어지고 3층의 탑신부만 있으며 고려 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은 양우주를 표현하였고 이 탑신 위에
김시동
2020.09.06 12:37
원주시
[원주] 강원 원주시 귀래면 마을이야기 ④ 미륵산과 마애불상
귀래면 주포리 미륵산(彌勒山)과 정신문화 원주에서 남쪽으로 22km 거리에 있으며 주포리의 북쪽에 있는 높이 689m의 산행하기 적당한 산이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오기전에는 용화산으로 불리다가 왕이 머물렀다고 하여 대왕산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정상의 거대한 바위에 조각해 놓은 미륵불상을 상징으로 미륵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김시동
2020.09.03 13:38
원주시
[원주] 강원 원주시 귀래면 마을이야기 ③ 경순왕과 경천묘
경순왕과 경천묘 _ 원주시 향토문화유적 1호경주김씨 종친회장이던 김충열님은 고자암에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는 문헌을 발견하고 경주김씨 문중들로 부터 모금하여 영정각 복원을 추진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자금으로 영정각을 지을 수 없어 종친들과 7~8년 간 백방으로 노력하여 원주시와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영정각을 복원하게 되었
김시동
2020.09.03 13:29
원주시
[원주] 강원 원주시 귀래면 마을이야기 ② 고향에 보내 온 편지
- 귀래면 너더리 마을(판교)이 고향인 지미령씨의 편지살면서 가슴 깊숙이 묻어둔 유년시절이 샘물되어 흐릅니다. 귀한 분이 오신다는 마을 귀래! 태어나 자란 곳의 사진들을 보니 제가 어릴 때 우리 너더리 마을이 참 많이 젊었네요.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둘 셋은 있었고 오가는 이들도 많았고 마을에는 유아원도 있었어요. 그 유아
김시동
2020.09.03 13:22
원주시
[원주] 한국아카이브신문 창간 특집, 강원 원주시 귀래면 마을이야기 ①
귀래면은 원주시청에서 남서쪽으로 24km 떨어져 있으며 백운산과 미륵산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동쪽으로 제천시 백운면, 서쪽으로는 부론면 단강리, 남쪽으로는 충주시 엄정면, 소태면, 북으로는 흥업면 매지리와 접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이 지역을 통틀어 구을파(仇乙坡)라 불렀고 조선시대에 용암, 귀래, 황산 등으로 불렸다. 지금으로
김시동
2020.09.01 11:05
원주시
[원주] 터 잡고 살기 좋은 마을, 치악산 아래 텃골
원주시 소초면 교항리 텃골,원주의 진산, 치악산을 병풍 삼아 자리잡고 있는 소초면 교항리 텃골마을의 기억이다. 교항리(橋項里) 라는 지명은 다리를 놓고 다니던 길목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다리목, 즉 한자로 橋項이라 부른 것 같다. 텃골(터)은 사람들이 살기좋은 땅에 터를 잡고 모여 살아 텃골이라 부른 듯 하다. 이것 저것 찾아보고 해석
김시동
2020.08.23 16:47
동해시
[동해] 골목길은 직진이 없다.
골목길은 직진이 없다. 삐뚤빼뚤, 굽고 휘어진 길을 찾고, 계단을 오르거나 돌아가야 하는 느림의 길이고 사색의 길이다. 장비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 냄새가 배어있는 길이다. 사람의 마음이, 이웃의 양보가 함께 어울려야 만들어 낼 수 있는 진짜 길, 골목길이다. 이제 그 정겨운 단어, 골목길이라는 추억의 단어도 점점 사라지고
김시동
2020.08.22 18:46
원주시
[원주] 살아온 세월 만큼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살아온 세월 만큼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곤의골, 이곳에서 태어나 80년이라는 세월을 벗하며 욕심없이 살아간다. 일제강점기 일본사람만 보면 피해 숨었고,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어르신은 6.25동란이라 부른다. 북한군, 중공군, 국군이 번갈아 마을에 들어오는 혼란의 시기도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 없어진 농토
김시동
2020.08.18 21:11
동해시
[동해] 동해시 동호동 바닷가 책방마을 기록화사업
동해시 동호동 바닷가 책방마을_기억수집. 삶의 환경이 기록의 존재와 부재를 결정한다. 기억에도 차별이 있고 삶의 무게가 있다. 하루 세끼 먹기 어렵던 시절, 사진 한장 남길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근대화, 산업화의 힘겨운 시대를 겪은 주민들에게 사진 한장 남긴 다는 것은 집안의 큰 일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김시동
2020.08.05 21:43
횡성군
[횡성] 조선의 명재상, 횡성인 고형산(高荊山 1453~1528)
조선의 명재상, 횡성인 고형산(高荊山 1453~1528)의 묘비는 횡성읍 정암3리 망백마을 뒤편 작은 능선에 있다. 고형산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횡성, 자는 정숙(靜淑)이다.고형산은 조선시대 명문대가로 고씨 가문이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조야(朝野 정부와 민간)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과 강릉을 오가는 국도를 개척하여 교통
김시동
2020.07.30 08:08
원주시
[원주] 육지속의 섬, 점말마을
전형적인 내륙도시인 원주에 섬마을이 있다.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점(店)말' 마을은 섬강의 건너편에 있는 마을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육지속의 섬마을이다. 강물이 줄고 바닦에 들어나는 갈수기에는 걸어가거나 사륜차나 트럭 등을 이용해야만 들어갈 수있는 이색적인 섬마을이다. 지정면 소재지에서 점말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1차선 도
양선석
2020.07.1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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